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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는 자존심 게임이 아닌데, 아 가끔은...



2022년 4월 11일


독자 여러분, 금융시장에 관심 있는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가끔 뉴스에 반응하는 투자자들을 이해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가령, Federal Open Market Committee, 즉 FOMC(연방공개시장위원회)가 3월에 금리를 25빞스(0.25%) 올린 것은 투자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들 아는 사실입니다. 게다가, 올해 남은 모든 FOMC 회의에서 금리를 올리고, 때로는 한꺼번에 25빞스보다 더 많이 올릴 수도 있다는 말까지 했었지요. 그리고 펜데믹이라는 위기에서 증시를 안정시키기 위해 약 8.5조 달러까지 부풀린 연준의 채권 포트폴리오를 줄이기 시작할 거라고 언급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증시를 움직일 만한 투자자들은 다 이런 공격적인 긴축 정책이 시작된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지난주에 발표된 FOMC 회의록 내용을 이유로, 증시는 다시 한번 크게 흔들렸습니다. 채권 이자율은 올라갔고(채권 가격이 떨어졌고), 대표적인 주식 지수도 의미 있는 하락을 면치 못했습니다. 회의록을 통해 새롭게 알려진 것이 있다면, 3월 회의 중 누가 25빞스가 아닌 50빞스 금리 상향 조절을 주장했는가 정도인데, 그것이 마켓에 그렇게 타격을 줄 만한 새로운 정보라고 생각하지 않는데도 말이지요.


여기서 제가 항상 믿어 왔던 생각 하나를 공유해 드리면 이렇습니다.


증시가 마감되면 항상 증권 전문가나 경제학 교수님, 증시 분야 보도를 책임지는 기자님 등이 그날 올랐던 주가나 내렸던 채권 이자율 등에 대해 설명합니다. 그런데 사실 트레이딩을 몇 초, 몇 분 단위로 하는 분들은, 증시 마감 이후 정리되어 보도되는 그런 몇 가지 대표적인 이유로 매입이나 매각 버튼을 누르지 않는다고 저는 믿습니다. 이런 전문 트레이더들은 몇 초 전에 나온 큰 매각 주문을 보고 따라 팔고, 몇 초 전에 나온 적지 않은 매입 주문을 보고 자신도 사겠다는 결정을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런 결정을 컴퓨터 알고리즘을 통해 자동으로 실행하는 것을 프로그램 트레이딩이라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추세를 시작하는 투자자들보다 추세를 따라가는 트레이더들 때문에 몇 시간, 혹은 하루, 나아가 며칠 동안의 증시 방향이 결정된다고 저는 믿습니다. 결국 인간의 욕심과 두려움으로 인해, 혹은 남에게, 경쟁자들에게 뒤쳐지지 않아야겠다는 인간 본능으로 인해 증시 방향이 결정되는 거죠. 이러한 증시의 일시적 패턴을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뉴스는 말 그대로 설명일 뿐입니다. 여기까지가 신순규의 '동의하거나 말거나' 제1번이었고요. 투자 일을 27년 넘게 하다 보니 이런 생각들도 생기나 봅니다.


마찬가지로 투자 일을 오랫동안 해 온 사람이라면 “내가 맞았어, 시장이 틀렸고.”라는 고집스런 생각을 하게 하는 경험이 있기 마련입니다. 저에게 이런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끔 한 뉴스가 지난주 목요일에 블룸버그 스크린에 떴었지요. 이번 주에는 이 이야기도 더불어 전해 드릴게요.


미국식품의약국(FDA)은 작년 6월에 제약회사 바이오젠이 개발한 아두헴(Aduhelm)을 승인하면서 의약계와 증시를 흔들었습니다. 20년 만에 처음으로 승인을 받아 낸 알츠하이머 치료제였는데, 사실 의학 전문가들이나 제약회사를 분석하는 애널리스트들은 거의 기대하지 않았던 FDA의 발표였지요. 저 역시 '아두카누맙(Aducanumab)'이라는 성분명으로 알려졌던 아두헴이 승인을 받을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2020년 11월에 승인 가능성을 매우 희박하게 만들었던 전문가들의 결정이 있었기 때문이었죠.


치료제 승인 과정에서 중요한 절차 중 하나는 외부자문위원회의 검토입니다. 말 그대로 FDA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외부 전문가들이 모여서 승인 요청한 약 성분에 대해 분석하고, 토론과 투표를 통해 그들의 의견을 FDA에게 제공하는 일을 합니다. 아두카누맙에 대한 외부자문위원회의 결정은 아주 확실한 승인 반대였습니다. 2020년 11월에 보도된 발표에 따르면, 위원 중 10명이 반대표를 냈고, 나머지 1명이 투표에 기권했습니다. 이 약의 승인을 권했던 전문가는 한 명도 없었던 것입니다. 외부자문위원회의 조언을 FDA가 꼭 따라야 하는 건 아니지만, 투표 패턴이 너무 확고해서 이 약의 승인 가능성을 다들 희박하게 봤습니다. 그래서 저도 바이오젠에 대해서 부정적인 판단을 내리고, 그 의견을 동료들에게 알렸습니다. 하지만 이 의견은 작년 6월에 발표된 아두헴의 승인으로 인해 한동안 '제 얼굴에 계란'으로 남게 됩니다.


오늘의 영어 한 마디, “Egg on face.” 이 말은 틀린 기대 혹은 부정으로 밝혀진 주장 등으로 인해 사람이 아주 바보스럽게 보일 때 쓰는 숙어입니다. 즉, 저의 부정적인 의견을 정면으로 반박한 FDA의 승인으로 인해 제가 바보가 되었다는 것을, “SK has egg on his face.”라고 표현한 것이죠.


그런데, 지난주 목요일에 다시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65세 이상의 국민들에게 의료보험 혜택을 제공하는 미 연방정부의 프로그램 메디케어가 극소수의 환자들에게만 아두헴을 제공하겠다고 발표한 것이지요. 바이오젠이 아두헴의 1년치 비용을 5만 6천 달러에서 2만 8천 달러로 줄였음에도 불구하고, 메디케어는 자격이 되는 임상시험에 참가하는 환자들에게만 아두헴을 메디케어 지불로 제공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말씀드렸듯이, 메디케어는 65세 이상의 국민들이 의존하는 의료보험이고, 알츠하이머는 대부분 나이가 많은 분들이 걸리는 병입니다. 그러다 보니 메디케어의 지불 거부는 알츠하이머로 고생하고 있는 환자들과 가족들에게는 치명적인 소식이었을 겁니다. 매년 2만 8천 달러나 지불하면서 효과가 불투명한 약을 복용할 '개인 환자'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바이오젠의 주가가 작년 6월에 비해 50% 정도 하락한 것을 보면 이런 부정적인 결정을 많은 투자자들이 염려했던 것 같습니다.


FDA가 아무리 전문가들의 조언을 무시하고 새로운 약을 승인한다 해도, 최고의 영향력을 갖고 있는 의료보험기관이 지불을 거부한다면 약을 개발한 회사는 계속 임상시험을 해야 하고, 결과에 따라 문제의 약은 환자들에게 제공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매우 슬픈 이 소식을 접하면서 “내 판단이 맞았어.”라고 생각하는 저에게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알츠하이머는 현대 사회가 풀어야 하는 커다란 문제고, 사람들에게 약간의 희망을 주었던 약이 널리 쓰이지 못하게 된 것은 분명한 불행인데, 그때 왜 상처 입었던 나의 자존심 때문에, 얼굴에 계란 맞은 불명예를 벗었다는 생각에, 약간의 만족감이 느껴졌는지, 참...


지난주 편지에 잠깐 말씀드렸듯이, 저는 이번 주 초에 한국에 갑니다.

다음 주 편지는 서울에서 보내드릴게요.


여러분, have a bullish week!


신순규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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