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에서 온 편지, 첫번째.
- Admin
- Mar 6,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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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Mar 13, 2022

2022년 3월 7일
독자 여러분, 금융시장에 관심 있는 여러분, 안녕하세요?
10년도 넘게 갖고 있었던 저의 www.skshin.com을 드디어 웹사이트로 열면서, 여러분을 만나뵙게 되네요. 너무 반갑습니다. 개인적으로 큰 일이 있지 않는 한 매주 월요일 아침마다, 경치가 아름다운 북뉴저지 타운 North Haledon에서 이렇게 찾아뵙고, 주중에는 문답도 하며, 아이디어를 나누고자 합니다. 빠르면 올해 7월부터는 저의 사무실 빌딩이 있는 뉴욕 월가에서 편지를 보내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난 주에는 애널리스트로서 적지 않은 성과를 오랜만에 올렸으면서도, 매우 씁쓸한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참고로 제가 하는 일을 잠깐 소개해 드릴게요. 저는 자산운용 팀에서 일하는 애널리스트입니다. 비슷한 일을 27년 넘게 해 왔습니다. 주식 분석도 5년 정도 했었는데요, 현재는 기업들이 발행하는 채권, 회사채라고 부르는 증권을 분석하고 매입/매각 등의 결정을 내리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요즘, 증권 일을 하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아주 많은 분들이 크게 두 가지에 대해 염려하고 있습니다. 인플레이션과 우크라이나 전쟁 말인데요, 어떤 이들은 전쟁이 인플레이션을 더 큰 문제로 만들 거란 염려를 하시는 것 같습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우선 원유와 가스 가격이 더 큰 폭으로 오르고 있고요, 세계 공급망 압박도 더 심해질 거라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코로나19 시국에도 계속 오르던 주가도, 같은 상황에서 계속 내려가기만했던 회사채의 이자율도 흔들리기 시작했지요. 물가가 계속 오른다는 것은 현찰과 주식 등을 포함한 금융 자산 등의 가치가 떨어진다는 말이니까요.
회사채를 발행하는 기업들을 분석하는 저는, 아주 오랫동안 매입 결정보다는 매각 결정을 더 자주 해야 했습니다. 이자율이 낮을 때는 채권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바이어의 입장에 있는 저는 살 만한 증권, 즉 튼튼한 기업이 발행하는 싼 채권을 자주 찾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본격적으로 침공했던 날, 2월 24일부터 약 1주일 동안 저는 새로운 기업 채권을 세 개나 매입할 수 있었습니다. 9500만 달러의 고객 자산을 투자할 수 있었습니다. 평범한 환경에서 이런 성과를 올렸다면, 트레이드를 확인해 주는 메시지를 받을 때마다 소리를 지르거나 박수를 쳤을 텐데, 저는 세 번 다 나오는 큰 한숨을 억제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매입 결정을 할 만큼 채권 가격을 내리면서 이자율을 올린 이유를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전쟁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 상황을, 많은 이들이 겪고 있는 불행을 이용해서 이득을 얻었다는 생각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곰곰히 생각해 봤는데요, 증시는 매우 냉정한 곳이라는 결론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기에, 가슴의 요동을 억누르고 머리에서 나오는 전략에 따라 결정을 내려야 하는 때가 많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국에 상장된 러시아 ETF가 아주 싸져서 많은 분들이 그 펀드를 매입했다는 뉴스를 읽으면서 짜증이 났었는데요, 그것도 어쩌면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내릴 수 있는 이성적인 투자 결정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뮤지컬을 좋아합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뮤지컬은 「지붕 위의 바이올린」입니다. 근래 알게 된 건데요, 20세기 초에 다섯 명의 딸을 키우던 가난한 사람, 이 뮤지컬의 주인공 테비아가 살고 있었던 아나태프카가 러시아의 마을이 아니라 우크라이나의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그 뮤지컬에 나오는 장면 중 하나를 소개할까 합니다. 며칠 전부터 계속 생각나서요.
유태인 전통에 따라, 전통을 의지하며 외부와는 거의 고립된 삶을 살던 커뮤니티에 한 청년이 찾아옵니다. 그는 키예프에서 대학교를 다니던 퍼칙이라는 학생이었습니다. 그는 러시아인들에게 억압당하던 유태인들의 권리를 찾으려는 열정에 불타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아나태프카의 사람들에게 바깥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에도 신경을 쓰라는 말을 합니다. 그러자, 그 말을 들은 한 어른이 이렇게 답합니다.
“내가 왜 바깥 세상 일에 머리를 깨뜨려야 돼? 그네들 머리나 깨뜨리라고 해.”
그리고 그 말에 테비아와 퍼칙이 이런 대화를 주고받습니다.
테비아: 네 말이 맞아.
퍼칙: 난센스! 우리도 이젠 바깥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아야 해요.
테비아: 네 말이 맞아. 저 사람 말도 맞고, 이 사람 말도 맞네. 두 사람 말이 다 맞을 수 없지 않나?
이렇게 겉으로 보면 반대되는 의견이 둘 다 맞는 경우가 가끔 있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해 왔습니다. 하루 아침에 전쟁통이 되어 버린 지역 주민들을 향한 마음과 생각. 고국을 지키기 위해 혹은 정치 지도자들의 결정에 따라 전투에 직접 참여해야 하는 사람들. 또 전쟁 때문에 고아가 되는 아이들과 난민이 되는 이들. 생명, 건강, 재산, 살아야 할 이유까지도 잃게 되는 사람들. 이 모든 이들을 향해 느끼는 안타까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는 현실 앞에서 느끼는 무력감. 그래도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겠다는 책임감. 이런 감정에 빠져 있다가도, 애널리스트 데스크에 앉아, 일에 충실해야 하는 근무 시간이 찾아옵니다.
또 러시아 대통령 푸틴을 지원한다는 이유나 러시아가 일방적으로 일으킨 전쟁을 비난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해고 당한 러시아 출신 유명 음악가들의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반면, 클라이번 피아노 콩쿠르 측에서 더 관대한 소식을 전해왔는데요, 올해 컴패티션에 나오기로 되어 있는 젊은 피아니스트 72명 중 15명이 러시아인이며, 그들이 다 계획대로 올해 6월에 텍사스에서 개최될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 참가하게 될 거라고 발표한 것입니다. 누구는 해고를 당하고, 누구는 꿈꾸며 준비했던 콩쿠르에 나가게 되는 세상. 누가 누구를 옳고 그르다고 판단할 수 있을까요? 다만, 냉전이 극에 달했던 시절, 1958년에 미국인 피아니스트 반 클라이번이 모스크바에 가서 차이코프스키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 참가할 수 있었고, 또 우승까지 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의 이름을 따서 시작한 국제 음악 콩크루 측이 내릴 만한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주에도 전쟁 소식은 계속 저와 여러분의 마음을 흔들겠지요. 그리고 저는 계속 고객들을 위해 투자 기회를 찾으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전쟁으로 인해 고생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아이들과 부모들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주고 있는 비영리 단체를 찾아 지원금을 보낼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 의미있는 한 주 보내시고, 다음 주 월요일에 또 편지로 찾아뵙겠습니다.
Have a bullish week! 감사합니다.
신순규 드림
귀한 나눔 감사드립니다. 계속해서 아름다운 소리가 되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