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행에서 만드는 것들
- Admin
- Mar 13,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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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Mar 13, 2022

2022년 3월 14일
독자 여러분, 금융시장에 관심 있는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렇게 주말마다 여러분께 보내 드릴 편지를 쓰니까 저도 좋네요. 저와 가족이 살고 있는 뉴저지주 North Haledon에는 토요일(3월 12일)에 눈이 왔습니다. 참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았던 한 주의 기억을 조금이나마 깨끗하게 만들어 주려는 듯, 몇 시간 동안 눈이 내렸습니다. 높은 언덕 위에 있는 저희 집에서 보는 눈 내린 풍경은 매우 아름답다고 아내가 말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신경을 써야 하는 뉴스가 그치지 않았던 지난 주를 완전히 기억에서 지울 수는 없겠지요.
일주일 전 월요일 아침, 제가 데스크에 앉아서 일을 시작했을 때는 벌써 브랜트유 가격이 배럴당 139달러까지 급등했다가 130달러 수준으로 내려온 후였습니다. 따라서 미국 소비자들이 부담하는 휘발유 가격이 전국 평균 기준으로 일주일만에 17% 넘게 올랐고, 디젤 가격도 19% 가까이 올랐습니다. 이런 통계를 아직 포함하지 않은 미국 소비자 물가 지수(CPI)가 7.9% 올랐다는 뉴스도 지난주에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인플레이션은 훨씬 더 심해질 거란 말이 됩니다. 너무 높아진 물가로 인해 소비를 줄여야 하는 생활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사실, 전쟁의 값을 직접 치르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국민들을 생각하면 인플레이션을 걱정하는 것이 죄스럽단 느낌도 듭니다. 시작된 지 2주가 넘어가는 러시아의 침공이 벌써 250만명의 난민을 만들었고, 러시아군이 포위 공격하고 있는 여러 도시에 200만명이 넘는 우크라이나인들이 갇히는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목숨을 걸고 탈출하려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자비를 구하는 기도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지난 월요일 저녁부터 저의 뇌리를 맴돌던 단어가 하나 있는데요, 눈치가 빠르신 분들은 짐작하셨겠지만, 바로 'make(만들다)'라는 단어입니다. 혼란스런 기억 때문에 탁해진 마음을 깨끗하게 만들어 줄 만큼 하얀 눈, 높은 물가가 만들어 내는 힘겨운 생활 환경, 인간의 욕망이 만드는 전쟁, 전쟁이 만드는 난민, 포위 공격이 만드는 피참한 현실 등. 영어로 make란 이 단어를 생각하게 된 이유는 지난 월요일 저녁에 저와 아내가 경험하게 된, 마음을 크게 움직이게 해 준 한 이벤트 때문이었습니다.
얼마 전에 만나게 된 지인께서 저와 아내에게 피아노 콘서트 티켓을 선물해 주셨습니다. 저희 결혼기념일이 3월 9일인데요, 3월 7일에 있을 피아니스트 조성진 님의 독주회 티켓이었습니다. 그래서 저희 부부는 26년이 되어 가는 결혼 생활을 이틀 일찍 기념하기로 하고, 집에서 약 90분 거리에 있는 프린스톤의 McCarter Theatre Center로 향했습니다. 한국인 최초의 쇼팽 콩쿠르 우승자인 조성진 피아니스트의 연주회를 처음 가보는 건 아니었습니다. 3년 전 카네기홀 콘서트에서도 아내와 내가 큰 감동을 느꼈기 때문에 이번에도 기대가 컸습니다.
2019년 1월에 들었던 그의 연주에서 저는 우주의 소리, 신비의 소리를 경험했었습니다. 88개의 키로 만들어진 악기에서 그런 웅장한 소리의 파노라마가 나올 수 있다는 것에 감동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이번 퍼포먼스에서는 매우 다른 것을 느꼈습니다. 그의 열 손가락이 피아노 은반 위에서 완전 자유를 얻은 것 같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마치 물리적인 한계에서 벗어나 그가 원하는 음악을 마음대로 자아내는 능력을 얻은 것 같았습니다.
26년을 같이 살다 보면 배우자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정확하게 짐작하는 경우가 자주 생깁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이번에 연주했던 쇼팽 곡 중 하나를 듣다가 제가 그만 소리 내어 웃었습니다. 콘서트를 즐기고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아내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 아까 기가 막혀서 웃었지?”
맞습니다. 저는 아주 오래전에 제가 같은 곡을 쳤을 때를 기억하며 기가 막혀서 웃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그렇게 곡이 다르게 들릴까 하는 생각, 마치 완전히 다른 곡을 듣는 것 같단 생각에 웃음이 나왔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어렸을 때 피아노를 약 10년 동안 '쳤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피아노라는 악기를 '연주하기도' 하지만, play로 번역되는 이런 동사가 조성진의 피아노 음악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는 음악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결론지었습니다.
He does not just play the piano; he makes music.
“Make” (“만들다”)라는 단어에 대해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한 적도 없는 듯합니다. 우선 수준 높은 예술적 성과에는 물론 make란 단어가 쓰여져야 한다고 봅니다. 음악뿐만이 아니라, 감정을 움직이는 그림에도, 환상적인 피겨 스케이터의 퍼포먼스에도, 사람에게 평안함을 주는 인테리어 디자인 등에도 make란 단어가 적합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랜 세월 삶을 같이 한 결혼생활에도 make란 단어를 써야겠단 생각도 했습니다. 여러 가지 증권과 전략의 일치로 구성되는 투자 포트폴리오에까지도 make란 말이 맞을 때가 있다는단 느낌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노력과 시간, 인내심과 소질 등으로 원하는 것들을 만듭니다. 우리가 만드는 것들은 목적과 영향에 따라 아름다움이나 만족과 같은 긍정적인 성과를 선사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전쟁을 하다'나 '전쟁을 일으키다'도 영어로는 'make war'로 번역됩니다. 그러니까 무엇을 만드느냐는 결국 우리의 선택에 달렸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과연 나는 주로 무엇을 만들며 살고 있나 하는 의문이 며칠 동안 머리를 복잡하게 했습니다. 제가 작성하는 기업 분석 자료나 글보다 더 저에게 '만듦'의 의미를 주는 것은 관계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26년을 함께해 온 아내와의 관계부터 시작해서, 자녀와의 관계, 그리고 다른 가족들과, 나아가서는 친구나 동료들과의 관계가 저에게는 더 우선적인 'make'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람에게 관심을 갖고 배려하고 보살피는 것 역시 수고와 희생이 필요한 '인간의 예술'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지루하기도 하고 무거운 생각에 잠겼던 한 주였습니다. 게다가 주말에 나온 코로나19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7일 평균 확진자가 30만이 넘었고, 7일 평균 사망자 역시 200명이 넘었다네요. 다음 주에는 더 밝은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한국의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드디어 감소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으로 다음 주 편지를 시작할 수 있기를 바라며, 인사드립니다.
Have a bullish week! 감사합니다.
신순규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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